선셋 리미티드
삶과 죽음이라는 원초적인 명제를 가지고 단 두 명의 등장인물이 대화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극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날카롭고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어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등장인물은 흑인과 백인으로 두 명으로, 흑인은 목사인 듯 아닌 듯 하지만 투철한 신앙심을
가지고 뉴욕 게토(뉴욕 빈민가)에 있는 빌라에 살고 있고, 백인은 대학 교수로 뉴욕 시내에
거주하는 듯 하지만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소설의 무대는 흑인이 거주하는 빌라의 거실로
대부분의 대화가 거실에 놓인 탁자를 두고 마주앉은 의자 위에서 이루어 진다.
두 사람은 당일 아침 지하철 플랫폼에서 만났으며 백인은 달려오는 열차인 선셋 리미티드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하려 했고 흑인은 그런 그를 구해 집으로 데려와 삶과 죽음에 관한
대화를 주고 받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흑과 백이라는 대비는 작품 속에서 여러 대비를
보여주는데 두 사람의 살아온 배경과 환경의 대비, 두 사람의 사고방식의 대비 그리고
삶의 자세에 대한 대비까지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창과 방패, 모순덩어리인 두 사람.
한쪽은 굴곡진 인생에 반하여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자이고 다른 한쪽은 대학교수로서
문화와 예술 그리고 지성의 삶을 살았지만 어느 순간 삶이란 것 자체가 의미 없음을,
모든 것은 무(無)이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없음을 깨달아 그 어떤 설명이나 설득으로도
생각을 바꿀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인물이다.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삶의 가치를 일깨우려
대화를 유도하고 부단하게 노력하는 한쪽은 결국 몇 몇 생각에 대해서는 다른 한쪽의
공감과 동의를 얻을 수 있지만 무의 세계 깊숙이 빠져 눈과 귀를 가려버린 어둠 자체를
걷어내진 못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알 수 없다. 처음부터 이런 극명한 대비를 둔
작가의 의도는 인류의 수많은 명제들 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명제인 삶과 죽음의 대비를
어느 한 편에 서서 바라보기 보다, 양자택일이 아닌 또 다른 생각을 이끌어 내게 함으로써
우리를 제3의 주인공으로 초대하려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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