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어루만지는 소리의 향연
일본작가의 소설이라고 하면 국내 작가의 소설과는 다른 기대가 있다. 우리와 가까우면서도 많이 다른 일본이라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을 소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정서적 괴리감을 느끼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대체로 잘 읽혀지는 소설을 택한 탓인지 그간의 일본 소설들은 대체로 괜찮은 느낌이었다. 이번에 읽게 된 <양과 강철의 숲>은 조금 생소한 일본작가 미야시타 나츠의 작품이다. 2016년 일본 서점대상 1위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책인데 사실 책을 읽기 시작하여 다 읽을때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타이틀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 왜 서점대상 1위를 차지한 책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참고로 서점대상은 일본 각지의 서점에서 현업을 하는 직원들이 투표해서 후보와 수상 작품을 결정하는 일본만의 독특한 문학상이다)
이 책의 제목은 사뭇 진지하면서 무언가 언밸런스 하다. 온순함의 상징 양과 강철 그리고 숲. 양과 숲은 그렇다 치더라도 강철은 도무지 어울릴것 같지 않은 화음의 제목이다. 그 내막을 살펴보면 피아노라는 악기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양털과 강철이며 그 양털과 강철이 만나 만들어 내는 소리가 숲의 냄세와 이미지를 형상화 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제목임을 알 수 있다. 소설속 주인공 도무라는 너무나도 평범한 고등학생 이었다. 하지만 학교 피아노를 조율하러 온 조율사 이타도리와 만난 후 그의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된다. 피아노란 악기도 조율사라는 직업도 생소했던 도무라지만 이타도리가 조율한 피아노 소리를 듣고 숲을 형상화하게 된 도무라는 그 자라에서 황홀경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조율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도무라는 조율사양성 전문 학교에서 2년간의 수업을 받은 후 이타도리가 근무하는 에토 악기점에 취직하게 된다. 일단은 필요한 기술을 배워 출발선에 섰지만 좀처럼 늘지않는 조율 실력으로 고민하는 도무라. 하지만 자신을 조율사의 길로 이끌어 주었던 소리를 한 고객의 집에서 다시 만나고 난 이후로 또 한번 그의 인생에 반향이 일어 난다. 의뢰인의 집에는 쌍둥이 자매가 있는데 그 자매가 피아노를 통해 만들어 내는 음악중 한 아이의 음악에 푹 빠지게 되고 그 아이가 전문 피아니스트가 되었을 때 그 아이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전속 조율사가 되는 것이 그의 목표가 된 것이다.
이 소설은 역동적인 문장이나 스토리도 기승전결의 경계도 반전도 없는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러운 소설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어떤 향기나 이미지에 취하게 된다. 특별할것 없는 주인공이기에 특별할것 없는 독자들이 읽었을때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며,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여정에 인생의 아름다움을 탐닉하는 특별한 경험들이 가미되어 주인공을 그리고 나 스스로를 응원하게 만든다. 분명 텍스트를 읽고 있지만 아름다운 소리를 들은 듯 하며, 가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작품내에 도무라가 이타도리에게 조율사로서 어떤 소리를 목표로 하느냐에 대해 아래와 같이 대답한 내용이 있다.
“밝고 조용하고 맑고 그리운 문체, 조금은 응석을 부리는 것 같으면서 엄격하고 깊은 것을 담고 있는 문체, 꿈처럼 아름답지만 현실처럼 분명한 문체.”
히다 마리키라는 일본의 시인이자 소설가가 한 말을 인용한 것인데, 아찔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인용문은 이 소설 전반을 지배하는 느낌이며 작가또한 이러한 문제에 가까워지기 위한 한 발걸음으로 이 소설을 탄생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계기로 미야시타 나츠가 앞으로 만들어낼 문체의 향연이 더욱 기대된다. 정말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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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Pure Planet
창작자들을 위한 Playground인 그라폴리오(Grafolio)란 곳이 있다. 전 세계 크리에이터들의 멋진 작품을 발견하고, 공유하고, 사고 팔 수 있는 콘텐츠 커뮤니티로서 작품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본인들의 작품을 꾸준히 알리고 또 작품 판매를 통한 수익 창출을 그리고 작품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수많은 창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온라인 전시관 같은 곳이다. 그라폴리오의 의미가 궁금하여 찾아 보았더니, Grand + Portfolio의 합성가 그라폴리오이며 거대한 포트폴리오를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각적 자극을 통해 감성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즐겨찾을 곳이 분명하다. 어쨌든 창작가 들이 많이 모여 있기는 해도 당연히 그 중에 눈에 띄고 인기를 끄는 작가가 있기 마련이니, 살구라는 펜명을 사용하는 작가가 그렇다. 그라폴리오 Top5 일러스트레이터인 살구가 플랫폼 밖에서의 첫 작품을 내놓았는데 그것이 이 책 <나의 순결한 행성>이다.
사실 그라폴리오 작가의 책은 이 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 작품은 얼마전에 읽었던 꼬닐리오라는 펜명을 사용하는 작가의 <그래도 너를 사랑한단다>였다. <그래도 너를 사랑한단다> 머리가 커다랗고 아기자기해서 귀여운 소녀와 토끼가 주인공 이었지만 <나의 순결한 행성>은 파스텔 톤의 순정만화 같은 예쁘고 멋있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소년과 소녀의 사랑 이야기가 주된 소재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고 하는데, 이는 정말 사랑을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온 정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쏠리게 되면 먹을 것을 눈앞에 두고도 사랑하는 사람만 쳐다볼 테니까. '먹지 않아도 배가 불러 라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었어'라고 말하는 소녀의 독백에서 소녀가 깊은 사랑에 빠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깊은 사랑뒤에 찾아오는 이별은 그 깊이에 비례해서 더 큰 아픔을 준다. 마음을 접는다. 이 말은 더 이상 사랑에 고통받고 싶지 않은 절박함에서 나온 말일 터. 하지만 마음을 종이처럼 쉽게 접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마음은 종이보다 훨씬 단단하기 때문에 그리 쉬이 접히지 않는다.
사랑의 시작은 언제나 모호하며 앗 하는 순간에 내 옆에 와 있는 것을 눈치채곤 한다. 우리는 늘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고 싶다. 모든 것을 함께하고 싶다. 하지만 언제나 함께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을 너무도 당연히 여기기 쉽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할 때, 어쩌면 그 때부터 어딘가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지도 모른다.
눈을 감으면 들리는 또 다른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들. 평행우주 속에 정말 나와 똑같이 생긴 내가 존재할까? 또 다른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리고 또 다른 나에게 내가 해 줄 이야기는 없을까?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이렇게 그림으로 만나니 더 반가운 기분이다.
무책임하게 잘해주지 말자. 잘 해주는 것에도 책임이 따른다. 잘 해준다의 다른 말은 상대방의 마음을 빼앗는 다는 것이니까. 마음은 온전히 자신의 것 일것 같지만 사실 상대방에 의해 너무도 쉽게 좌지우지 되는 것이니까.
때때로 내가 하는 행동들을 내가 이해할 수 없다. 무엇인가에 정신이 홀딱 빠진게지. 내가 이렇게 흥분하고 내가 이렇게 오버 하는 것은 다 그대 때문이다. 평소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그런 얼굴 하지 마라.
인연을 믿는가? 미신을 믿지 않지만 인연은 어느정도 신뢰한다. 정말 무슨 탐지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찾아 냈을까? 더욱이 우리가 떨어져 있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찾아낼 수 있다는 확신마저 든다.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살구 작가의 순결한 행성으로의 여행은 아주 몽환적이었다. 아름다운 그림과 글에서 순결함이 마구 묻어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창작가로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고생해 본적이 없다는작가. 하지만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디테일에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는 작가. 분명 세심한 손끝에서 탄생한 주인공들 이기에 그렇게 감정 표현이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그림으로 세상에 나온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살구 작가의 펜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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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이제, 외우지 말자
역사는 되도록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한 가지 해석은 그 해석을한 한 사람 혹은 한 그룹만의 주관이 전혀 배재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에 붉어진 역사교과서 왜곡 논란을 살펴보자. 주관이 개입된 교과서는 과거사가를 왜곡할 것이고 이것이 미칠 영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좋던 실던 그 영향을 받을 후대의 아이들에게는 사상교육 만큼이나 위험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각종 매체릍 통해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에 발 맞추어 최근 교실 외에선 잘 거론되지 않던 한국사도 비단 교육채널 뿐만 아닌 엔터테인먼트 채널에서도 많이 다뤄지고 있다. 한국사가 교실밖으로 뛰어나와 살아 숨쉬고 있는 느낌이다.
이번에 위즈덤 하우스에서 출간한 <단박에 한국사>는 역사 무식자도 쉽게 맥을 잡는다는 컨셉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저자는 심용환 역사&교육연구소 소장인 심용환씨로 팟캐스트 <진짜 역사 가짜 역사>를 통해 가족들이 함께 듣는 올바른 역사이야기를 전파하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한국사의 근대편과 현대편으로 나뉘어져 있는 이 책의 근대편을 살펴 보았는데 단순히 한국사에만 촛점을 맞춘것이 아닌 우리와 연관된 동아시아 국가들, 특히 일본과 중국의 역사적 사건들을 함께 살펴볼 수 있어 좀 더 광범위한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다. 또한 딱딱한 흑백 사진들 대신 역동적이고 컬러풀한 삽화들을 중간중간 삽입해 몰입도를 높여 준다. 이 근대편에서는 조선 말기부터 일제시대 까지의 한국 근대사를 다루며 1강 부터 29강까지 총 29개의 근대사 이슈들을 정리했다.
각 강의에는 역사적 사실과 더불의 핵심을 관통하는 ‘맥을 잡아봅시다’와 단순한 주입식 역사공부가 아닌 생각하는 역사공부를 위한 ‘생각해 봅시다’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이 이 책을 독특하고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핵심이 아닐까 생각된다. 역사를 그냥 일어났던 사건으로 치부하고 단순하게 ‘이랬습니다’에 그치는 것이 아닌 이 역사가 품고있는 핵심과 그 핵심을 바라보는 다양한 사고를 요구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현재를 해석하기 위함입니다.
현재와 관련되지 않은 과거는 죽은 과거에 불과하죠.”
p.74
저자의 말처럼 현재와 관련되지 않은 과거는 죽은 과거에 불과하다. 우리는 정규 교육과정을 통해 역사를 연도와 인물 중심의 단순 암기과목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시험을 치르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공부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공부가 아니다. 단순히 암기한 역사들은 휘발되어 우리 머리속에서 사라진지 오래고 흐르는 세월에 켜켜이 쌓여 역사=암기라는 것만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듯 하다. 저자는 또 말한다. 암기만으로 역사를 해석할 수 없다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맥락을 고찰해야 하며, 시간의 순서를 파악해야 하고, 당시의 세력과 사회 지형도를 확인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럿이 파악되고 사고되기 시작하면 오늘 우리의 현재를 역사적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고. 공중파를 통해 유명해진 역사교육자 설민석 또한 맥락을 잘 짚어 청중으로 하여금 역사를 잘 파악하게 돕고 그것을 바탕으로 청중들에게 화두를 던져 스스로 생각하게 하며 공감을 통해 감동을 전해줄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 것이 아닐까?
<단박에 한국사>또한 교실안에서 지겹게 듣던 암기용 역사가 아닌 살아 숨쉬는 우리 역사를 함께 생각해 보고 느껴보고 또 그 것들을 바탕으로 작금의 문제들에 투영해 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줄 수 있는 양서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단박에 맥을 잡는 연표는 한국사 시험 준비생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정도로 정리가 잘 되어있다. 전체적인 책 구성도 그렇지만 저자의 노고가 그대로 묻어나는 대목이니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니 이 책을 읽어 볼 계획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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