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헤어짐 그리고 다시 영원한 만남
‘백수광부’란 머리가 하얗게 샌 미친사람이란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서정시로 <공무도하가>가 있는데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서정시일 것이다.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로 시작하는 이 서정시는 백수광부의 아내가 부른 노래로 알려져 있다. 내용인 즉슨 남편이 물을 건너다가 물에 빠져 죽자 이를 본 아낙네가 구슬프게 노래하는 내용이다. 이 작품의 배경설화에 따르면 남편이 죽고 난 후 아내도 따라 죽었다고 전해지는데 결국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다시 만남의 윤회적인 사상이 깃들어져 있는 시가 아닌가 싶다.
<백수광부의 침묵>은 전자책 전문 출판사인 에스프리의 ‘소설 한잔 시리즈’로 나온 중편 소설이다. 2001년 농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중·단편과 미니픽션 작품들을 써오던 유경숙의 신작으로 종이책 없이 전자책으로만 출간되었다는 점이 독특하다면 독특하다. 총 3개 부분으로 나뉘는 소설은 2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와 두 번째 이야기에 미세한 연결고리가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두 이야기가 한 작품이라고 확신이 서질 않는 부분이 있는 독특한 소설이다.
첫 번째 작품인 입산통제구역사람들에는 가족보증을 잘못선 남편이 집을 탕진해 버리자 신뢰를 잃은 부인이 집을 나갔다가 근 20여년 만에 남편에게 돌아온 여자와 그의 남편의 이야기이다. 과거의 상처는 그 흔적을 남기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물게 마련이다. 물론 너무 깊게 패인 상처는 아물어도 흉터가 남아 평생을 따라 다니겠지만 대부분의 시간의 연고로 잘 아물것이다. 비록 떠나버린 아내가 원망스럽더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아내와의 약속을 기억하고 묵묵히 세월을 견뎌낸 남편과, 남편이 싫어 떠났지만 지구 몇바퀴를 돌고 다시 재회를 꿈꾸며 찾아온 아내의 이야기는 공무도하가의 만남 헤어짐 그리고 다시 영원한 만남이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인연이라는 것이 참 얄궃기도 하고 참 끈질기기도 한 것 같다.
두 번째 작품은 친구의 안타까운 죽음을 통해 자신의 과오와 미숙했던 인생을 되돌아 보고 다시 자신의 역할을 되찾아가는 한 남자와 그 친구의 여동생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여동생은 죽은 친구가 남기고 간 유일한 혈족으로 주인공 남자가 과거에 저질렀던 과오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인물이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결국 주인공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친구의 동생을 거두어 또 다른 인생, 어쩌면 당연히 거기에 있어야 했던 인생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돌아오게 된다.
<백수광부의 침묵>은 긴 여정인 우리의 삶에 마지막 여정에 관한 이야기란 생각이 든다. 멀리 돌아왔지만 결국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사람들. 그리고 그 곳에서 변함없이 우리를 기다렸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살냄새를 맡으며 자신을 찾아낼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이 소설 곳곳에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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