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세상의 모든 일곱 살짜리에게는 슈퍼 히어로가 있어야 한다.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정신과에서 검사를 받아보아야 한다”
우리의 삶을 이루는 구성요소중 가장 큰 애증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가족이다. 공기나 물 같이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곁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소중함을 더 모르는 그리고 너무도 편하기 때문에 서로 방심하고 대하는 존재들. 가족은 최소 단위의 사회이기 때문인지 그 안에서도 수없이 많은 갈등과 화해가 연속적으로 발생한다. 가족이라는 조그만 사회안의 재미있는 요소로, 인접한 세대간에는 갈등이 많이 쌓이는 반면 한 세대를 건너뛴 세대간에는 친밀도가 높아진다. 바로 부모 자식간의 관계와 조부모와 손주간의 관계가 그럴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도 받지만 대게는 부모의 엄격한 통제안에서 휘둘리는 존재이다. 반면 조부모에게는 절대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세상에 둘도 없는 훌륭한 후견인을 거느기게 된다. 예전과 달리 핵가족화로 인해 조부모와 지내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더라도 조부모들은 그들의 손주들에게 있어 최고의 후견인 임에는 틀림없다. 그들이 바로 슈퍼히어로인 것이다.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
프레드릭 배크만은 <오베라는 남자>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작가이다. 굉장히 오랫동안 베스트 셀러를 유지하고 있는 <오베라는 남자>는 까칠한 노인 오베를 통해 우리에게 이웃과 가족을 바라보는 시각을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바꾸어주었다. 흔하지 않은 캐릭터와 우리 주변에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소재들을 버무려 친근감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해 주었던 소설이었던 것 같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는 전작인 오베와 아주 유사하면서도 사뭇 다른 소설이다. 가족과 이웃을 소재로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감동을 선사하는 것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지만 등장인물들이 오베보다도 좀더 복잡하고 많으며, 오베는 할아버지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지만 이번 작품은 7살짜리 꼬마 엘사의 관점에서 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이 다르다. 어쨌든 배크만은 유사한 맥락의 이야기를 전혀다른 관점과 에피소드 그리고 진한 감동을 주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작가인 것 같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이 책의 주인공 엘사는 곧 있으면 8살이 될 7살 소녀이며 또래들 보다 너무 똑똑해 오히려 친구가 없다. 그래서 유일한 친구인 할머니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똑똑하고 예쁜 손녀딸을 너무도 사랑하는 할머니는 세상에 둘도 없는 괴짜이지만 손녀딸에게 만큼은 슈퍼히어로이다. 두 사람은 두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는 암호가 있고 이야기를 지어내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할머니가 지어낸 이야기 세계에 함께 여행을 다닌다. 엘사와 할머니의 관계는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엘사 가족의 관계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엘사의 엄마는 엘사 아빠와 이혼하고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 그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이고 엘사 할머니와의 관계는 본인의 그러한 상황과 정반대의 성격으로 인해 매일같이 갈등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주변의 이웃들도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을 빛어내고 있어 엘사 주위의 사람들은 항상 위태로워 보인다.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게 되고 할머니가 남긴 편지로 인해 주변사람들이 극적으로 변하게 되고 엘사는 변함없는 할머니의 사랑을 재차 확인할 수 있게된다.
할머니의 편지
에필로그에 수록된 할머니의 편지는 우리의 눈물샘을 충분히 자극한다. 우라지게도 철자를 틀리는 할머니는 편지를 통해 아직도 엘사 곁에서 생생하게 말하고 있는듯 한 느낌을 준다. 할머니는 아파서 미안하고 괴팍해서 미안하고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할머니는 엘사를 통해 주변인들에게 미안하다고 전했지만 실상은 엘사에게 가장 미안하다. 그래서 에둘러 말한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다 읽고 내 어린 시절의 슈퍼 히어로였던, 그리고 세상 누구보다도 내가 진정한 슈퍼 히어로가 되었으면 하고 바랬던 지금은 보고 싶어도, 손을 잡아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할머니가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 딸을 지켜주는 슈퍼 히어로들이 있다는 것을 위안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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