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

1 articles
  1. 2016.02.25 미래를 상상하는 방법으로서의 모더니티

[도서]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

자크 아탈리 저/양영란 역
책담 | 2016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소실된 ‘우리’의 개념을 다시금 일깨우고 지금 세계 곳곳에서 미미하게 움직이고 꿈틀대고 있을 이타성의 씨앗에 싹의 틔울 수 있는 단비가 되는 책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현재의 집합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현재()의 집합은 미래라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기도 하겠다. 세계적 석학 자크 아탈리는 이 책 <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를 통해 인류가 진보해온 과정을 모더니티의 관점을 통해 해석해 보고 그 과정을 거울삼아 우리가 맞이할 미래의 방향성을 모색해 보자고 말하는 듯 하다.

 

저자가 언급하는 모더니티는 사전적 의미의 현재성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듯하다. 저자는 모더니티에 대해 모든 시대에 있어서 한 사회가 미래에 품고 있는 개념, 그 사회가 미래에 대해 상상하고 소망하고 거부하는 것 등을 암묵적으로 뭉뚱그려 지칭한다고 했다. 즉 모더니티는 인류에게 있어 미래를 상상하고 준비하는 방법이나 방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과거의 모더니티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더니티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 이 책의 큰 틀이라 할 수 있겠다.

 

과거 모더니티의 역사를 살펴보고 분류해 보자면 크게 실존 지향적, 신앙 지향적 그리고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로 분류할 수 있다. 3가지 큰 모더니티의 프레임 안에서 인류가 발전하고 진보해 왔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실존 지향적 모더니티는 4세기 이전까지 인류의 모더니티로서 생존 지향적 모더니티라고 다르게 표현될 수 있겠다. 인류의 최대관심사는 생존, 안정이었으며 이를 위해 집단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이상적이라 상정했던 것이다. 생존 자체가 인류의 최대 목표였던 시기를 지나 각종 기술의 발달로 부를 축적하게 되면서 인류에게는 보다 진보한 모더니티가 필요하게 되었고 이후 1500년동안이나 세상을 지배하게될 신앙 지향적 모더니티가 생겨났다. 모더니티의 전환은 아주 빠르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변화를 겪어가면서 이전의 모더니티는 부정되고 기독교적 가치관과 세계관이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신앙 지향적 모더니티도 18세기 계몽시대에 접어들어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혁명을 거치면서 권력이 이양되어 붕괴되었다. 이후 등장한 것이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 로서 이성과 합리성이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하게 되었다.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는 시장과 민주주의시대와 어우러져 근대에 가장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모더니티로 여겨지게 되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들어 시장과 민주주의의 맹점 즉 모든 사람들에게 이상적이지는 않다는 점들이 드러나면서 허무주의가 이상주의 모더니티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후 등장한 개념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예술에 의한 사회변혁을 비롯하여 마르크스주의 등 기존 이성과 시장의 모더니즘을 완전히 거부하는 움직임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다시, 1950년대에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가 더 많은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의 갈망 속에서 돌아오게 된다. 이 때는 기존의 모더니티와는 다른 개념이 적용되는데, 사람들은 더 많은 자유, 작금의 자유를 갈망하게 되고 그와 더불어 쾌락을 요구하게 되는 컨템포러리의 시대로 탈바꿈한 것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예측이 없는 작금의 순간순간만이 가장 소중한 시대가 그것이다. 이는 미래가 없다는 말과 다름이 아니다.

 

자크 아탈리는 컨템포러리시대에서 다음 세대(2030)의 모더니티로 하이퍼 모더니티, 비 모더니티, 복고 지향적 모더니티, 민족 지향적 모더니티, 신정정치 지향적 모더니티 그리고 생태 지향적 모더니티를 상상했다. 하지만 그는 미래 인류의 존속을 위해서는 가장 가능성이 적은 대안 모더니티로 이타적 모더니티를 제시했다. 중심의 이기적 모더니티에서 중심의 이타적 모더니티로의 전환이 인류를 지속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안으로 보인다. 미래학자인 그가 던지는 이러한 화두는 소실된 우리의 개념을 다시금 일깨우고 지금 세계 곳곳에서 미미하게 움직이고 꿈틀대고 있을 이타성의 씨앗에 싹의 틔울 수 있는 단비가 될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