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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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26 시집살이 詩집살이

[도서]시집살이 詩집살이

김막동,김점순,도귀례,박점례,안기임,양양금,윤금순 등저
북극곰 | 2016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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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는 전혀 다른 삶을, 거칠고 힘든 삶을 사셨던 할머님 들이지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가 되는 것은 분명 할머님 들의 노래에 진솔함과 투명함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일것이다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 서봉마을. 그 곳에 9명의 시인이 있는데 그 분들은 걸출하지도 유명하지도 않지만 삶의 희노애락을 본인들만의 언어로 표현할 줄 아는 분들이다. 우리는 글의 화려함이나 기교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작자의 삶을 온전히 담아내고 읽는이로 하여금 그 삶에 스며들 수 있게 만드는 진솔한 글에도 마음이 움직인다. 여시고개 지나 사랑재 넘어 심심산골 사는 곡성 할머니 9분이 뒤늦게 한글을 배우고 그림을 배워 손수지은 시와 그림을 수록한 책이 <시집살이 詩집살이>이다.


이 책은 곡성 할머님들의 지나온 삶의 족적을 품고있지만 시공간을 초월한 할머님들의 순수함 마저도 함께 품고 있다. 전통적인 한국 결혼문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할머니들의 삶은 농사일과 시집살이로 점쳐져 있다. 과거 먹을 것이 없어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해야했던 일들, 신랑을 군대에 보내고 더욱 어려워진 삶을 감내해야 했음은 물론이거니와 행여나 군에 입대한 신랑이 돌아오지 못하면 어떻하나 마음 졸였던 일들,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끝이 보이지 않았던 농사일까지, 투박하지만 구수한 사투리로 할머님 본인들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의미>

김막동


남편이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


실제 남편과 자식을 땅과 가슴에 묻은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시라고 생각된다. 김막동 할머님의 애절함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생각하믄>

안기임


시어메가 동서하고 나하고 밭으로 쫓는다

젖먹이도 띠어 놓으래서

방에서 기어나올까 봐

작은 방 문지방에 짝대기 하나 걸쳐 놓고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도

넣어 놓고 갔다

“어서 오니라 똥 쌌다”

목청도 좋아 신기밭까지 올라오는

시어메 고함소리 듣고 뛰어가믄

똥을 싸서 방바닥에 발라 놓고

얼마는 먹고

또 얼마는 벼랑박에 문대 놓고

울도 안하고 웃도 안하는

아새끼

딱고 젖 주고 또 띠어 놓고 가믄

동서가 내 밭까지 다 매 놓고

눌은 밥 한 덩이 남으면

“형님 먹으시오”

“동서 먹으오” 했다.


아이 낳고도 돌볼새도 없이 힘들게 일하며 시집살이까지 감내해야 했던 안기임 할머님의 삶의 노래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울컥하실 기억이신가 보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련했던 기억이신가 보다.


곡성 할머님들의 시집살이는 고된 역사였지만 그 회한을 노래로 풀어낼 수 있었던 두 번째 詩집살이는 분명 할머님들의 삶을 아름답고 가치있게 만들어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투박하고 때때로 거칠은 노래들이지만 황혼의 연배에도 소녀같은 감성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할머님들의 시가 빼어난 기교와 상상력으로 무장한 현대 시인들의 시와는 다른 날 것의 감동을 전해준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삶을, 거칠고 힘든 삶을 사셨던 할머님 들이지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가 되는 것은 분명 할머님 들의 노래에 진솔함과 투명함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